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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행복의 건축',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건축

by tory_story 2024. 2. 22.

 <소개>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은 스위스 태생의 유명작가 '알랭 드 보통'이 건축에 관해서 쓴 에세이다. 드 보통은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전공자의 시선보다 더 신선하고 위트 있다. 심지어 건축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문가보다 더 전문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보통의 시선을 따라 건축을 처음 시작하거나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건축과 조금 더 친해지도록 돕는다. 

 

 

<줄거리>

1) 건축의 의미

  삶의 터전인 집은 우리에게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 건축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지만 여러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는 이들은 시각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건축을 향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현실주의라는 관점에서는 더욱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비교적 결과로써 증명하기 힘든 분야에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태도다.

  건축은 말이 없다.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하고, 명령하기보다는 권유하며 자신이 악용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자신을 수상쩍게 보는 태도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이런 건축이기 때문에, 그것이 은근하게 건네는 조언을 스스로가 존중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건축의 의미는 그것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와 함께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엿볼 수 있는 것이다.

 

2) 어떤 양식으로 지을 것인가

 기후나 생활습관 등, 특정지역의 제약을 통해 생성된 초기의 건축양식들은 후대의 건축가들에게 미의 기준이 되곤 했다. 로버트 애덤은 케들스턴 홀을 설계하며 배면 한가운데에 로마의 개선문을 끼워 넣었고, 조지프 핸섬은 버밍엄의 시청을 설계하며 프랑스의 님에 있는 메종 카레를 똑같이 본떴다. 역사 속에서, 고전주의와 고딕양식의 반복이 이어졌고 건축가들은 끊임없이 '미'에 대해 논의했지만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19세기에 공학의 원칙과 건축의 원리가 대립하며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건축가들은 기능적인 원칙들을 가치의 새로운 척도로 정립하며 건축사 전체를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확실성 없는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를 기능에 대한 고려로 바꾸면 해결 불가능한 분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건축의 역사에 모더니즘이 등장했다.

  모더니즘의 아버지이자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는 "비행기는 고발한다."라고 언급하며, 비행기는 날아야 한다는 요구 때문에 불필요한 장식이 사라졌고 그 때문에 가장 성공적인 건축물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빌라 사부아는 과연 실용적이기만 할까? 빌라 사부아의 아무런 장식 없이 텅 빈 벽은 장인들이 스위스에서 수입한 값비싼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손으로 만든 것이다. 빌라의 지붕 역시 비실용적이다. 코르뷔지에는 평평한 지붕이 물매가 있는 지붕보다 더 좋다고 고집하며 건축주를 설득했지만 완공된 후에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일이 너무 잦아 법정 문제로 번질 뻔했다. 모더니즘 건축가들도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다.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주로 기술적인 맥락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건축과 관련하여 과학기술을 얘기하는 것이 사회에서 가장 칭송받는 힘에 호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모더니즘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모순을 확인하면서 건축학적 대안들의 혼란스러운 과잉으로 돌아가게 된다. 공학 또한 우리가 살 집의 모습을 규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모든 양식적 대안들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명료하게 대답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창피하고 심지어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건축이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것은 단순히 미학적으로 좋다는 뜻 이상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좋아하는 겉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지키며 살고 싶은 가치의 문제를 건축적 난제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3) 말하는 건물

  직선은 안정되고 둔감한 사람의 느낌을 주고, 물결선은 세련되고 차분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톱니 같은 선은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선조차 이렇게 많은 것을 얘기한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아름다운 곡선 형태의 잔을 보며 여성성과 우아함을 보고, 원기둥 형태의 텀블러에서 남성성과 엄격함을 엿본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건축물을 감상할 때 물질적이거나 관념적인 무언가를 연상하는데 이것은 자의적이기 때문에 자주 혼란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대학 시절 불행한 생활을 했던 집의 양식이라는 이유로 고딕양식을 싫어할 수도 있다. 같은 이유로, 고딕양식이 행복한 기억을 상기시킨다면 그 양식을 좋아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은 우리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투사를 견뎌낼 만한 내적 자산을 갖추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좋은 특질을 단지 연상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체현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지리적인 기원을 넘어 살아남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런 건축물은 우리의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속 좁은 연상 위에 우뚝 서서 자신의 속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4) 집의 이상

1. 기억

  우리 의식 속에서, 혹은 무의식 속에서 환경의 영향에 몸을 맡기고 있다. 예를 들어, 맥도널드와 중세시대 교회건축물을 비교하면 공간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아름다운 건물이 우리가 잊고 살던 도덕성이나, 영적인 부분을 개선할 힘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아름다운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호사이기는커녕, 명예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탐구의 핵심에 놓인 일로 여겼다.

  세속적인 건축물도 종교 건축과 마찬가지로 그 궤도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신을 섬기지 않더라도, 가정적인 건축 하나가 사원이나 교회와 다를 바 없이 우리 자신에게 사라진 의미 있는 부분을 기억하는 일을 도울 수 있다. 

2. 이상

  건축은 우리의 이상을 반영하지만 이상화된 건축과, 그것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의 현실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건축의 목적은 삶의 전형적인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앞에 그것이 최선일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3. 이상이 변하는 이유

  아름다운 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계속 변해왔다. 이에 대해 독일의 미술사가 보링거는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이 당대 사회의 결여된 가치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힘입어 건축의 의미를 이상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립하는 결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이 결여되어 있어서 저것을 아름답다고 할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것이 현재 우리 내부의 그림자 속에 놓여 있는 것을 집중된 형식으로 구현할 때에 그것을 아름답다고 선언한다.

 

5) 건축의 미덕

1. 질서

  건축물 사이의 '질서'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기하가 자연에 대한 승리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반대되는 기하의 개념을 통해 성립되는 질서에서, 우리는 삶을 향한 충동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서를 향한 충동을 느낀다. 때문에 우리는 질서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은 이 질서에 복잡성이 수반될 때, 즉 다양한 요소들이 합을 이루어 하나의 질서를 형성한다고 느낄 때이다.

2. 균형

  우리는 질서와 복잡성의 병치에서 생기는 '균형'에서도 건축학적 미덕을 확인할 수 있다. 섬세하게 균형을 잡은 건물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이런 건물들을 보면서 우리 성격의 갈등하는 측면들 사이에서 우리가 판결을 내릴 수 있고, 조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곤혹스러운 대립물들 사이에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우아

  절벽 사이를 이어주는 길게 뻗은 다리, 도시를 대표하며 우뚝 서 있는 마천루,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창조물처럼 우리보다 강한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은 보통 몇 가지 특질이 조화를 이룬 결과이기 때문에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힘만으로 부족하다. 건축 작품이 우아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여주는 단순성과 힘이 여간해서는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느껴져야 한다.

4. 일치

  건축은 독창자라기보다 합창단이다. 건축은 다중적은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 아름다운 협화음이 울릴 기회도 생긴다. 어떤 것도 그 자체로는 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단지 엉뚱한 곳에 있거나 크기가 엉뚱할 뿐이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자신의 각 부분과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 배경과도 조화를 유지하여 일치된 관계의 산물이다.

 

6) 들의 미래

  사라질 미래인 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우리의 집이 그것보다 열등하지만은 않다. 들의 위에 우연적으로 등장하는 불행한 건축물의 사례를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핑계 대지 않고 우리의 무능을 마주한다면, 건축의 진정한 다양성을 제대로 알고 '와비'를 느낄 수만 있다면, 들의 미래를 대신할 건축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약속할 수 있다.

 

 

<후기>

  건축을 수학하는 입장에서 처음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 회의적이었다. 전공자들조차 건축이 가진 다양성 사이에서 길을 잃기 마련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얻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과연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박식을 자랑한다지만 건축에도 통할까?라는 입장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편협한 생각을 비웃으며 건축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의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다시 생각해 보면, 행복의 건축은 전문가나 비전문가가 아니라 건축을 사랑하는 보통의 사람이 쓴 책이다.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